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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현 10번째 개인전: 나무상자 - 자연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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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술가 고승현의 10번째 개인전이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 위치한 금강자연미술센터에서 오는 5월 22일부터 6월 2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해충돌’을 주제로 옛 양조장의 쓰임이 담긴 오동나무 상자에 오브제를 조합한 40여점의 작품과 설치작업 등을 선보인다.
 
- 전시기간: 2021. 5. 22 - 6. 20 / 10: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 금강자연미술센터 (충남 공주시 우성면 연미산고개길 98 연미산자연미술공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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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된 자연, 현실을 비추다

채 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1. 들어가며 

자연미술가 고승현은 지난 40여 년의 활동에서 줄곧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을 음미하는 태도로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장소 특정적 설치와 퍼포먼스 작업을 지속해 왔다. 1994년 작 <이끼 드로잉>에서처럼 현장에서 발견한 자연물을 재료 삼아 선을 그리거나, <하나 되어>(1987)<풀밭에 누워서>(2010)와 같이 작가의 신체를 자연에 개입시키며 떠오르는 찰나의 감응에 초점을 두고 작업하는 것이다. 자연물을 향해 자신의 손이나 얼굴을 포개거나 때로는 지면에 누운 자세로 완성한 이 작품들에 드러나듯, 고승현의 자연미술은 현장에서 행위자와 자연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그리고 자연에 개입하되 그것의 전체적인 형상을 해치지 않고 순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관객은 현장에 남겨진 설치 또는 작업의 영상과 사진 기록물을 통해 그것을 접할 수 있다. 기록물은 감상의 간접적인 경로이지만 관객은 자연이라는 소재와 작가의 꾸밈 없는 행위에 친숙함을 느낄 수 있고 그것에 이내 공감하게 된다.

한편 작가는 1981년 공주에서 시작한 자연미술가 단체 야투의 창립 멤버이자 현재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자연미술의 발전을 견인해 오고 있다. 그는 19831월 공주 금강에서 진행한 창작 워크숍에서 자연미술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이후 야투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공주 원골 국제 레지던시, 글로벌노마딕아트프로젝트 등을 창설하고 운영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며 자연미술 담론의 확장과 전 지구적 실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특히 글로벌노마딕아트프로젝트는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하는 국내외 작가들과 해마다 세계 각 지역을 유랑하며 현지의 자연 현장에서 창작하는 행사인데, 작가는 행사를 처음 추진한 2014년경부터 자신의 작업 반경을 해외로 확장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작가는 새롭게 만나는 자연에서도 공통적인 지점을 찾아내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현장형 작업들을 시도했다. 2011년 이란 카스피해에서 작업한 <돌멩이의 여행>, 2017년 터키 이즈미르에서 작업한 <깃털의 여행> 등에서 버려진 나무 조각 위에 자연물을 설치하고 물에 위에 띄워 흘려보내는 퍼포먼스를 통해 자연의 생동과 순환을 표현했다. 멋진 절경보다도 평범하거나 척박함에 가까운 환경을 만났을 때 더 많은 영감을 얻고 여러 가지를 실험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몸담은 고향 공주의 금강에서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강변의 개펄에 뒤섞인 흙과 돌멩이, 산업폐기물 조각을 볼 때, 거기에서야말로 자연의 생명력이 강렬하게 솟아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말이다.

 

2. 자연과 비자연의 상충 관계 

2021년 현재도 진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야투의 글로벌 창작 활동은 잠시 멈춤 상태다. 고승현 작가도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랜만에 현장이 아닌 일상공간에서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세계의 자연 현장에서 수집한 여러 사물을 콜라주하여 입체 작업을 시도하게 된다. 하루하루 손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4개월이 조금 못 되는 기간에 40점이 넘는 작품을 완성했다.

이렇게 준비한 10번째 개인전의 주제는 이해충돌이다. 자연과 인간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을 말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담론은 자연미술에서 지속적인 화두이지만, 막상 고승현이 자연과 인간의 충돌을 형상화한다니 꽤 낯설게 들렸다. 그간 자연과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해 왔던 그의 예술적 특성과 결이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작가는 이 어젠다를 강조하기보다 은유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 문명과 자연이 충돌하는 상황에 관심을 두었지만 관련한 사회적, 과학적, 문화적 담론을 참고한 것이 아니며, 작가의 일상 속에서 감지한 생태적 위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낡은 오동나무 상자를 프레임 삼아 자그마한 오브제들을 조합하여 상자 표면 위에 각기 다른 높이로 고정한 것이다. 이 상자는 공주 시내에서 오랜 세월 운영하다 최근에 문을 닫은 양조장에서 작가가 공수해 온 것인데,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발효시킬 때 쓰였던 상자이다. 상자 속에 쌀과 누룩을 넣고 오랜 시간 동안 바람에 말려 술을 담그는데, 자그마치 50년이 넘게 사용했다고 한다. 한국의 술을 담던 상자 속에 작가가 설치한 여러 가지 오브제는 독일, 몽골,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것으로 모두 작가가 작업하던 현장에서 맞닥뜨린 물건들이다. 피스타치오 씨앗 껍질, 죽은 새나 고라니의 뼈다귀, 고목 둥치와 나뭇가지, 나뭇잎, 조개껍데기, 산호 등의 자연물도 있고, 작가가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에 들어가서 찾아낸 구리 코일, 배수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팬 장치도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사회구조가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기술 기반의 사회로 급격히 변모하면서 자연은 인간에게서 점차 소외되었고 분리되었다. 20세기 후반 이후 전 지구화(globalisation)는 세계를 하나의 경제 단위로 재편하고 합종연횡시키며 재화 생산의 효율과 이윤 추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내몰고 있다. 자연의 가치는 부와 결속하여 판단되며, 물신주의가 자연주의를 압도하게 되었다. 자연으로부터 태어났고 자연을 벗 삼아 자랐던 인간이 이제는 자연을 낯설게 여긴다. 자연은 다가가기 힘든 그리움의 대상 또는 재해를 일으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연을 욕망한다. 접근하기 쉽게, 사용하기 쉽게, 보기에 좋게 가공하고 그 모습을 영속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자연을 선망한다. 또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 형태, 질감을 재현한 제품을 원하는 우리의 모습은 자연이 인간에게 환상이 된 현실을 반증한다.

 

3. 합성된 자연  

자연이 환상이 된 현실에서 고승현의 예술 작업은 자연을 있는 모습 그대로 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자연에서 만들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현장 속 자연미술 작업뿐 아니라, 2002년부터 자연의 재료와 인공의 형태를 조합하여 만든 가야금 연작도 그렇다. 살아 있는 나무를 자르기보다 도로 건설 현장에서 잘린 나무나 태풍에 넘어진 나무를 사용하였고, 가야금 형태로 빚은 이 작품을 연주할 때 나오는 소리가 울렸다 사라지는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자연의 특징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품 안에 인공재의 비중을 높여 자연 재료와 거의 동등한 비율로 사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합성물에 사용된 오브제들은 공통적으로 문명사회에서 쓰임을 다하고 재화적 가치를 상실해 버림받은 물건들이다. 한 차고지의 후미진 곳에서 찾아낸 벌집에 공주 연미산에서 수집한 규석과 트랜지스터를 이어 붙여 새로운 합성물을 만들어내거나, 자동차 배기관으로 쓰였던 부속품 일부에 솔방울과 나뭇가지를 구리 코일로 엮어서 마치 하이브리드 신체처럼 보이는 오브제를 만들었다. 산업적 용도에 맞게 가공된 파이프 형태가 남아 있지만, 자연물과 결합되니 마치 인체 장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버려진 인공물을 자연물에 접붙여 새롭게 회복시켰다고 말할 수도 있다.

통상적인 미술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도 작가의 다른 자연미술 작업과는 구별되는 지점이다. 황토에 물감을 섞어서 검붉게 물들인 것을 상자 위에 깐 뒤, 황토가 갈라진 틈 사이로 다양한 빛깔의 규석을 부착한 상자 작업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오브제를 합성하여 설치한 표면 위에 펜 드로잉과 아크릴릭 채색을 가미한 작업도 있다. 오동나무 상자 중앙에 피스타치오 씨앗을 수직이 되게 꽂아 점선 형태를 만들고, 점선을 경계로 양쪽에 인간 형상을 그려 놓았는데 잔뜩 웅크린 태아 자세를 취한 채 서로를 마주 보는 모습은 빈 씨앗이 한때 품었을 생명을 향한 간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공과 자연이 결합된 형상도 선보이고 있다. 오랜 시간 물살에 휩쓸려 다니던 고철 조각에 흙과 자갈이 달라붙은 것을 가져와 마치 추상 조각의 형상처럼 설치했다. 고철에 달라붙은 자갈들이 부식한 철의 붉은빛을 머금은 모습은 인공 장기가 상용화되어 사이보그 신체가 현실이 된 현대 인간의 자화상과 같이 다가온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환상이 아닌 지금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4. 현실의 기록 

작품 속 오브제는 그가 유랑했던 세계 각지의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베틀 위에 양귀비 씨앗을 올리고, 아르헨티나산 강낭콩 꽃씨와 멕시코 조개, 고슴도치과 동물의 가시털, 새의 깃털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수집한 병뚜껑에 그려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얼굴까지 조합하여 설치한 작업은 이국적이면서도 토속적인 인상을 준다. 공주에서 직물공장을 경영했던 부친의 유품이기도 한, 베를 짜는 데 쓰이는 북에 산에서 주운 고라니 뼈를 구리선을 가지고 단단하게 결합한 작업도 있다. 서로 다른 시간이 연결되어 새로운 기억을 엮어내는 형상이다. 작가는 보일러나 가전제품의 부품으로 쓰이는 이 구리선을 폐기장에서 수집해서 여러 작품에 조합하여 넣었다.

손때 묻은 사물들을 그려 모아서 재구성하는 과정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의미가 더 각별해졌다. “그때 내가 그곳에 있었다라는, 현재로서는 아득하기만 한 기억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되어 관객에게도 팬데믹 이전의 기억과 현실의 괴리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가 된다. 또한, 전시장에 함께 설치된 다양한 장소에서의 현장 작업 기록 영상은 자연과 교감하는 작가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교감하는 기쁨을 관객에게도 상기시킨다.

 

5. 나가며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생태에 대한 의식 환기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과도한 활동이 현재의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초래한 만큼, 인간에게 자연을 섬세하게 다루는 윤리적 태도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작가가 최근 사이언스월든(Science Walden) 프로젝트를 통해 생태학자, 과학자, 예술교육자 등과 협업하는 다학제적 생태 회복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그의 작품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낼 뿐 아니라 자연과 갈등하는 인간의 현실에 대한 회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된다.

이번 전시는 고승현의 작업세계에서 새로운 기점으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기존의 자연미술 범주로 묶기 어려운, 새로운 합성 작업 구조의 출현이라는 점에서다. 물론 고승현의 신작은 여전히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자연을 변형시키거나 침투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전한다는 점에서다. 작가의 생태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생태 드로잉> 연작2000<해변 스탬프>와 같이 바다에서 밀려온 철 부산물을 모아 자연 위에 올려둔 작업 등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하여 더욱 새롭게 엮이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생태와 생명의 중요성을 내 자신의 건강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감염병 재난의 시기에, 결코 내 것이 아닌 자연을 다시 돌려주고자 하는 의식이 회복되고 그러한 실천이 이번 전시를 통해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