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HOME ENGLISH
  • 비엔날레
  • 지난 비엔날레
  • 비엔날레

    지난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들을 올려드립니다.

    지난 비엔날레

    지난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들을 올려드립니다.

    [ 2021 ] 클레가 (독일) Klega (Germany)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조회Hit 1,066   작성일2021-08-30

    본문

    클레가 (독일) 

    Klega (Germany)


    ​<[헛된] 연습 Exercise [in futility]>


    c2dd4487d583cb29f81a06cd64f89571_1630291728_6447.jpg
     

    이 프로젝트는 아주 실험적이고, 실제로 실현하기보다는 연습에 초점을 둔다.

    아마 당신은 집 마당에 있는 각 나무의 목록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무들을 보편적 명칭인 나무혹은 라틴어로 된 과학적 명칭으로 부른다. 사람들이나 혹은 반려동물들과 달리 나무들은 그냥 이런저런 나무다. 월터 벤자민(독일 철학자)과 아도르노(독일 철학자)는 보편적인 명칭에 대해 그것이 가리키는 것을 도구화하는 지배의 언어로 간주했다.

    반면에, 그들은 창세기의 단어가 도구화될 수 없는 적절한 이름들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처분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위해 습관적으로 도구적 언어를 사용한다. 심지어 자연과 더불어작업하는 예술가조차도 그들 작품의 자료로서 도구적 언어를 사용한다. ‘자연에 대한 새로운 혹은 다른 접근방법이 나무에 적절한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즉 나무를 개체로 보거나 혹은 사회의 한 부분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Peter Wohlleben, ’나무의 감추어진 삶, 그리고 현재의 과학 연구; Baluska, et al., ‘식물들의 의사소통 - 식물의 삶에서 신경학적 측면’, 2006).

    그래서 나는 삶에 대한 다른 실천에 대한 연습으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열리는 이곳에 있는 나무들에 적절한 이름들을 붙여보는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재야생화이다.

     

    This project is quite experimental and more focused on ‘practice’ than making.

    I am sure you do not have an inventory of all individual trees in your ground. We call trees by the universal ‘tree’ or a latin scientific name. Not even very old and venerated trees (in Korea or elsewhere) have a “proper name”. Unlike humans or house animals, they are just a ‘tree’ of this or that sort. Walter Benjamin as well as Adorno, considered the language of universals as one of domination, which instrumentalises all that it denotes.

    On the other hand they argued the ‘first’ language of Genesis was one of “proper names”, one that cannot be instrumentalised. We habitually use instrumental language to ‘dominate’ the world and see all things around us as disposable. Even artists working ‘with’ nature use it just as a resource for their work. A new or different approach to ‘nature’ is to start a habit to give trees a “proper name”. That means, trying to see trees as individuals, or even parts of a society (e.g. Peter Wohlleben, The hidden Life of Trees, and current scientific research, e.g.: Baluska, et al.-Communication in Plants-Neuronal Aspects of Plant Life, 2006).

    The idea therefore is to give trees in the grounds of GNAB “proper names” as an exercise in a different ‘practice’ of life and how to approach what we call ‘nature’. It is a “rewilding” of a different kind.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